청소기를 하나 구입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청소기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청소기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리태 때문이다.

  고양이는 개보다 털이 더 많이 빠지는 짐승이다. 그 점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기 때문에 충분히 숙지하고 있다. 또한 그 점이 내가 리태 - 올블랙 고양이 - 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나에게는 검정색 옷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리태는 아직 털이 빠지지 않는다. 보통 고양이는 4개월이 넘으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털을 뿜는다고 한다. 우리 리태는 이제 2개월 반이고 아직 털이 빠진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시점에 청소기를 구입한 이유는, 물론 장차 리태가 크면 당연히 청소기를 사용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리태를 빗자루에 덤벼들기 때문이다.

  리태는 기성품 장난감에 별로 반응하지 않는다. 리태가 좋아하는 장난감이라는 것들이 종이를 구겨서 운동화끈에 매단 것, 종이접기로 만든 공, 빵 끈, 병뚜껑 정도이다. 엄마손표 가난한 장난감에 열광해 주는 것이야 매우 고맙지만 문제는 리태가 정말 좋아하는 장난감이 바로 빗자루라는 것이다. 내가 비질을 시작하면 저 멀리서 납작하게 엎드려 궁둥이를 씰룩거리다가 빗자루를 덥치는 행동을 매우 좋아한다. 그래서 비질이 매우 어렵다. 빗자루에 매달려 빗자루털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먼지를 쓰레받기에 담아놓으면, 리태는 매복을 한답시고 쓰레받기 위에 엎드려 빗자루를 공격할 준비를 한다는 것이다ㅠ 덕분에 열심히 쓸어놓은 먼지는 다시 리태 몸에 붙어 더 멀리 더 빠르게 퍼진다...

  오늘, 인터넷으로 주문한 청소기가 도착해서 뚝닥뚝닥 조립하여 시험 가동을 해보았다. 고양이들이 청소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이건 너무 웃기는 경험이다. 청소기 소리에 놀라 책상위로 후다닥 뛰어 올라가 숨더니 청소를 끝내고 나서부터는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목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이건 리태의 발톱을 깎으려 할 때와 내가 밖에 나갈때 내는 바로 그 소리다. 정말정말 청소기가 싫다고 강하게 어필을 하는 것이다.

  그래도 어쩌겠니 아가, 네녀석이 책상 밑이며 싱크대 밑이며 구석까지 들어가 끄집어 낸 먼지는 정말 상당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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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콩벌레요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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