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6/03/Thu
검은콩 이야기 2010. 6. 3. 23:13 |고양이는 정말이지 경이로운 생명체다.
리태는, 나의 리태는 하루하루가 놀라움 그 자체다.
처음 데리고 온 날 걷는 모습도 어설프던 녀석. 내 품에서 발발 떨고만 있었다. 물론 그렇게 발발 떨게 만든 장본인은 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내 품에서 잠이 들기도 했었다. 그날은 한쪽 눈에 눈꼽도 한가득 껴있었다.
밤에 자려고 누웠다. 저만치 구석에 있던 리태가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와.....내 얼굴을 밟고 지나갔다-_- 벽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와 잠깐 씨름을 하기도 했다.
둘째날. 눈꼽은 감쪽같이 사라졌고, 먹기는 또 얼마나 잘먹는지 한두시간 자다 일어나면 우선 사료부터 몇알이라도 먹고 놀다가 다시 한두시간 자고, 또 일어나면 밥그릇부터 찾기를 반복했다. 첫날 간단한 검진을 위해 찾은 병원에서 의사선생님께서 사료는 매회 서른알 정도를 하루에 세번씩 주라고 하셨지만 리태는 그정도로는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한참을 밥그릇앞에 앉아있었으니까..
그리고 둘째날부터는 리태가 내 옆에 와서 자기 시작했다. 분명 잠이 들때는 저만치 책장 밑칸 구석에 숨어들어 있었는데 자다가 깨보면 내 옆에 있었다.
또, 둘째날부터 리태는 자다가 깨면 나를 찾기 시작했다. 리태가 잠자리로 선택한 곳은 책장 맨 밑 구석인데 거기 숨어 한두시간 자다가 깨면 울면서 나를 찾는다. 내가 대답을 하면 일어나서 기지개를 쭉 켜고는 내게 종종종종 걸어왔다.
내가 누워 티비를 보는데 리태가 저쪽에서 사냥감을 노리는 자세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오호 이놈봐라' 싶어서 어떻게 하나 쳐다보았더니 슬금슬금 낮은 자세로 나를 향한다. 그러더니 내 안경알에 앞발을 척 올려놓았다. 안경알에 제 모습이 어른어른 비치는 것이 신기했나보다.
셋째날, 월요일. 리태를 두고 출근을 해야 했다. 나는 아침 다섯시에 일어나 리태에게 밥을 먹이고 한바탕 놀아주었다. 내가 나갈때즈음에는 잠이 드는것이 낫지 않을까 싶었으니까... 물그릇에 새 물을 받아주고, 밥그릇에서 점심에 먹을 양을 챙겨주었다. 의사선생님은 아직 이맘때는 자율급식은 어려울거라 했지만 방법이 없다. 나는 출근해야하니까.
출근해서는 하루종일 싱글싱글 웃다가 심각해지다가를 반복했다. 리태가 꼬물락 거리는 모습을 떠올리면 자연히 웃음이 나는데 혹시 내가 없는동안 빨래 건조대가 넘어진다면, 집에 도둑이라도 든다면, 불이 나면 어떡하나하는 걱정들을 하느라 이내 심각해졌다. 다섯시부터 엉덩이가 들썩이고 여섯시가 땡!하자마자 집으로 날아왔다.
리태는 내가 방문을 열자 울면서 뛰어오더니...내 몸을 엉금엉금 타고 올라와 내 멱살을 잡았다-_-;;
출근할 때 놓아둔 사료는 깨끗이 비워져 있었고, 새 물과 사료를 주자 '바로 이거야!'라는 듯이 사료를 흡입하더니, 드디어 우리집에서의 첫 응가도 보았다! 누가 고양이 아니랄까봐 모래로 응가를 덮는 시늉을 하는데 아직은 어설프다. 앞발로 모래를 열심히 긁어서 뒷발을 덮더라ㅎㅎㅎ 여튼 나는 리태의 첫 응가를 보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넷째날. 리태는 뛰기 시작했다. 첫날은 걷는것도 어설프던 녀석이 달리기도 하고 내가 방을 빗자루질하고 있으면 빗자루를 향해 몸의 털을 곧추세우고 사이드스텝도 보여줬다. 오늘이 다르고 내일이 또 다른 리태의 모습이었다.
아직 주문한 장난감이 오지 않아 구긴 종이를 운동화끈에 매단 가난한 장난감에는 또 얼마나 열광을 해주던지. 고양이 낚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섯째날. 선거일. 휴일. 주문한 고양이 용품이 왔고 로프를 의자 다리에 감아 스크래처를 만드는 동안 리태는 내 다리를 베고 누워서 로프를 가지고 열심히 장난질이었다.
먹는 양도 많이 늘었다. 이제는 한번에 마흔에서 쉰알 정도의 사료를 먹고 트름 한번 시원하게 내뱉으면 아깽이답게 똥고발랄하게 뛰어논다.
집에 엄마와 막내동생이 왔다 갔다.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엄마지만 우리 리태는 예쁘다고 하신다.
잘때는 이제 당연하게 나의 옆자리다. 내가 베개를 베고 누우면 리태는 내 머리카락을 가지고 한참을 장난치다가 내 어깨와 목 사이에 둥글게 자리를 잡고 누워 잠든다. 그렇게 우리는 체온을 나눈다. 이럴때 리태에게 손이라도 갖다대면 바로 골골송이 시작된다. 웃긴것이 뛰어 놀다가도 내가 잡아다 쓰다듬으면 눈을 지그시 감고 굴굴굴굴거리고 있다.
오늘. 여섯째날. 한시간 일찍 퇴근해서 집에 왔다. 리태 화장실에서 맛동산도 캐고 감자도 캤다. 의사선생님이, 아이가 아직 어려서 화장실 입구가 높을테니 책같은 걸 받쳐주라고 했지만 내 고양이 리태는 셋째날부터 받침대 없이도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그리고 자율급식도 가능해졌다. 사료를 조금 많이 줬다 싶으면 어김없이 남겨두었다가 나중에 먹는다. 강아지들처럼 배부른것도 모르고 먹어대다 짜구날까봐(ㅎㅎㅎ) 걱정했는데 이제 그런 염려는 없다.
리태는 지금 내 발등을 베고 누워 자고 있다. 너무 사랑스럽다. 꼭 이렇게 나의 신체의 한 부분을 점유하려고 한다.
잠이 들까말까할 때에는 내 눈을 보면서 뭐라뭐라 말도 한다.
장난감도 몇개 사주었는데 아직은 내 다리와 빗자루를 더 좋아한다. 가만히 자다가도 갑자기 내 종아리며 허벅지를 깨문다.
고양이는 정말이지 경이로운 생명체다.
나에게 온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나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었다.